세탁은 어떻게 오염을 제거할까
이 글의 핵심
세탁은 물과 세탁기의 움직임만으로도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물에 잘 녹는 오염은 물에 녹아 빠져나가고, 느슨하게 붙어 있는 먼지나 입자는 물의 흐름과 옷감의 움직임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피지나 기름처럼 물과 잘 섞이지 않는 오염은 맹물만으로 제거하기 어렵다. 이때 세탁세제가 도움을 준다.
세제에 들어 있는 계면활성제는 물이 섬유와 오염에 더 잘 닿도록 하고, 기름성 오염이 떨어져 나온 뒤 다시 붙지 않도록 돕는다. 알칼리나 빌더 같은 성분은 이런 작용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세탁수의 상태를 조절한다.
여기에 세탁기의 움직임, 물의 온도, 세탁 시간도 함께 작용한다.
그래서 세탁력을 하나의 성분이나 기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세탁은 화학적인 작용, 세탁기의 움직임, 온도와 시간이 서로 맞물려 오염을 제거하는 과정에 가깝다.
물만으로도 세탁이 되는 이유 핵심 ↩
세탁기에 세제를 넣지 않고 옷을 물에 담가 돌려도 어느 정도 깨끗해진다. 물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땀에 들어 있는 염분처럼 물에 잘 녹는 물질은 물에 녹아 섬유에서 빠져나온다. 물이 섬유 사이로 들어가 오염을 녹이고, 세탁과 헹굼 과정에서 오염이 섞인 물이 빠져나가면서 오염도 함께 씻겨 나간다.
먼지처럼 섬유 표면에 느슨하게 붙어 있는 입자도 마찬가지다. 세탁기가 옷을 흔들고 뒤집는 동안 물의 흐름이 생기고, 옷감끼리 부딪히면서 마찰이 발생한다. 이런 움직임만으로도 비교적 약하게 붙어 있는 먼지는 떨어져 나갈 수 있다.
문제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오염이다.
피지나 식용유 같은 기름성 오염은 물과 잘 섞이지 않는다. 특히 섬유 표면에 기름이 얇게 퍼져 있으면 물만으로는 쉽게 떨어뜨리기 어렵다.
그래서 물만으로도 어느 정도 세탁은 가능하지만, 모든 오염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세탁의 가장 기본적인 작용은 간단하다.
물에 녹는 것은 물로 옮기고, 느슨하게 붙은 것은 움직임으로 떨어뜨리는 것.
여기에 물만으로는 잘 제거되지 않는 오염을 처리하기 위해 세제의 화학적인 작용이 더해진다.
계면활성제는 기름을 어떻게 씻어낼까 핵심 ↩
기름때를 물로 씻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물과 기름은 서로 잘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름이 섬유 표면에 붙어 있으면 물이 오염에 잘 닿지 못한다. 물이 기름 표면에 고르게 퍼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폴리에스터처럼 물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섬유에서는 이런 차이가 더 커질 수 있다.
여기에서 계면활성제가 등장한다.
계면활성제는 물과 기름처럼 성질이 다른 물질이 만나는 곳에 모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과 친한 부분과 기름과 친한 부분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성질 덕분에 계면활성제는 물이 섬유와 기름성 오염에 더 잘 닿도록 돕고, 섬유에 붙어 있던 오염이 떨어져 나오기 쉬운 상태를 만든다.
하지만 계면활성제를 단순히 ‘기름을 녹이는 성분’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하지 않다.
기름이 물에 녹는 것은 아니다. 계면활성제가 기름과 섬유 사이에 작용하면 기름이 섬유에서 떨어져 나오기 쉬워지고, 세탁기의 움직임도 오염을 떼어내는 데 함께 작용한다.
떨어져 나온 오염이 다시 옷에 붙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계면활성제는 떨어져 나온 기름성 오염이 물속에 분산되어 씻겨 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는 계면활성제가 만드는 미셀(micelle) 같은 구조도 관여한다.
쉽게 말하면 계면활성제는 기름성 오염이 섬유에서 떨어져 나오도록 돕고, 떨어져 나온 오염이 물과 함께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성분이다.
알칼리는 기름을 모두 비누로 만드는가 핵심 ↩
알칼리성 세탁은 조금 더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다.
흔히 알칼리성 물질이 기름때를 비누처럼 물에 잘 섞이는 형태로 바꿔 제거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지방 성분이 알칼리와 반응해 비누 성분을 만드는 비누화 반응은 존재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세탁기 안에서 기름때 대부분이 비누로 바뀐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비누화는 알칼리의 농도와 온도, 반응 시간 등의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인 가정 세탁은 비누를 만드는 과정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세탁에서 알칼리의 역할을 단순히 ‘기름을 비누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알칼리성 환경은 세탁수의 상태를 바꾸고, 일부 오염이 제거되기 쉬운 조건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세탁에서 알칼리는 기름때를 모두 비누로 만드는 성분이라기보다, 일부 오염이 떨어져 나오기 좋은 세탁 조건을 만드는 성분으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물의 성질도 세탁력의 일부다 핵심 ↩
세탁기에 들어가는 물도 세탁 결과에 영향을 준다.
수돗물에는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녹아 있을 수 있다. 이런 성분이 많은 물을 경수라고 한다.
경도가 높은 물에서는 칼슘이나 마그네슘 같은 성분이 세제의 작용을 방해해 세탁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 세탁세제에는 이런 영향을 줄여주는 빌더(builder)라는 성분이 사용되기도 한다.[1]
빌더는 쉽게 말하면 세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물의 상태를 조절해주는 성분이다.
빌더의 종류에 따라 작용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물속의 칼슘과 마그네슘이 세제의 작용을 방해하는 것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세탁세제는 단순히 ‘때를 떼는 성분’을 넣은 제품이 아니라, 오염의 종류와 세탁수의 조건까지 고려해 여러 성분을 조합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세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핵심 ↩
세탁세제가 오염이 떨어져 나오기 쉬운 상태를 만들어도, 오염이 저절로 옷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세탁기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세탁기의 회전과 물의 흐름은 옷감을 계속 움직이고, 옷감끼리의 마찰도 섬유에 붙어 있던 먼지와 오염을 떨어뜨리는 데 관여한다. 드럼식 세탁기에서는 빨래가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움직임도 생긴다.
이런 움직임은 물과 세제의 작용으로 떨어져 나오기 쉬워진 오염을 섬유에서 떼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
세탁 시간도 영향을 준다. 세제와 물이 오염에 작용하고 오염이 섬유에서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길수록 항상 더 잘 세탁된다는 뜻은 아니다.
온도도 세탁 결과를 바꾸는 조건이다.
피지나 일부 지방성 오염은 온도에 따라 상태와 점도가 달라질 수 있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이런 오염이 더 유동적인 상태가 되면 세제가 작용하고 씻겨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뜨거운 물일수록 무조건 세탁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온도는 오염의 종류와 섬유, 사용하는 세제에 따라 달라진다. 낮은 온도에서도 충분히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세제가 있는 반면, 일부 세제 성분은 온도에 따라 녹거나 작용하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세탁은 한 가지 작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만으로 제거할 수 있는 오염도 있지만, 기름성 오염에는 계면활성제 같은 세제의 화학적인 작용이 필요할 수 있다. 여기에 세탁기의 움직임, 온도와 시간이 함께 작용한다.
세정 분야에서는 이런 관계를 Sinner's Circl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화학적인 작용, 기계적인 작용, 온도, 시간이 함께 세정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세탁력은 어느 하나의 조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염의 종류나 세탁하려는 옷감의 특성에 따라 온도, 세제, 시간, 세탁기의 움직임을 함께 봐야 한다.
정리
세탁을 ‘세제가 때를 녹여 없애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세탁 대용품을 제대로 비교하기 어렵다.
실제 세탁에서는 물과 세탁기의 움직임만으로도 일부 오염을 제거할 수 있고, 계면활성제와 알칼리 같은 화학적인 작용이 여기에 더해진다. 물의 성질과 온도, 시간도 세탁 결과에 영향을 준다.
결국 세탁력은 특정 성분 하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내는 결과에 가깝다.
그렇다면 세탁세제를 대신한다고 하는 방법들은 이 과정에서 무엇을 대신하고 있을까?
어떤 방법은 세제의 형태를 바꾸고, 어떤 방법은 세탁수의 성질을 바꾸거나 특정한 세탁 기능을 보완한다. 세제 없이 다른 원리로 세탁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제품도 있다.
겉으로는 모두 세탁세제의 대안처럼 보여도 실제로 제공하는 기능은 서로 다르다.
그래서 대용품을 비교할 때는 ‘천연인가’, ‘친환경적인가’ 같은 표현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세탁에 필요한 여러 기능 가운데 무엇을 제공하고, 무엇을 제공하지 않는가.
이 질문이 다음 글에서 여러 세탁 대용품을 비교하는 출발점이 된다.
[1]: Umber JJ, Brown DM, Cameron BA, Meyer SS, Powell JA, Sisco BR. The effect of water hardness on washing performance of built and unbuilt surfactants. Journal of Consumer Studies & Home Economics (1992) ↩